2023년 회고
군생활 50%

오성민
January 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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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려보니 2023년이 끝나있다.

회고를 쓰려고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와서 작년 회고를 읽어보려 했는데... 헉! 작년 회고를 안 썼더라. 그래서 작년 연말에 무엇을 하고 있었나 생각을 해봤는데 학원 강사 생활을 하면서 저녁에 강의만 스을쩍 하러 다녔고, 또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기에 회고를 쓸 생각조차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2023년 회고에 앞서 2022년을 짧게 되돌아보겠다.

2022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한 해였다. 고등학생 때 힘든 일을 겪으면서 앞으로 내 삶에 이보다 힘든 1년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으나 인생이라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한 힘든 일이 내게 찾아온 탓에 창대한 목표를 가지고 휴학을 했으나 정작 처음에 목표한 바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고, 내 성장을 위해 투자해야 할 소중할 시간들을 헛된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 낭비했다. 1년을 그냥 낭비해 버렸다는 자책감이 들었고 남들보다 1년 뒤처진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나마 9개월 정도 수학 강사 생활을 하면서 조금 모은 돈 정도가 위안이 됐다.

어쨌든 2022년 12월에 학원 강사를 그만두고 2023년 3월 6일에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대했다. 입대하기 전 3개월 동안은 아무것도 안 하고 놀기만 했다. 돈을 아주 펑펑 쓰고 뇌도 도파민으로 물들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재밌지는 않았던 것 같다.

훈련병 생활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학원일을 하면서 목이 좀 안 좋아졌었는데, 분대장 훈련병(반장 같은 개념)을 하면서 계속 소리를 질러야 해서 목이 그냥 많이 아팠다. 새벽에 완전군장 메고 행군하던 모습이 기억에 좀 남는 것 같다.

훈련병 마치고 2주간 후반기 교육 때는 그냥 뭐 너무 편했다. 훈련병 때부터 써왔던 사업 아이디어 노트가 계기가 돼서 같은 생활관에 창업에 관심 있는 동기랑 좀 친해지게 됐다. 교육도 열심히 들었더니 시험에서 1등을 해서 휴가도 3일 받았다.

자대는 어쩌다보니 다시 육군훈련소에 배치됐다. 다른 동기들은 육훈소 보급병 빡세다고 싫어했는데, 나는 유명한 부대여서 그냥 좋았다.

자대에 와서 가장 먼저 내가 노력한 것은 운동이다. 일주일에 3일 이상은 푸시업, 윗몸일으키기, 스쿼트, 달리기를 하고 있다. 주변에서 다들 운동을 하는 분위기인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운동과 관련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상병 진급 시험에 통과한 것이다. 사실 난 입대하기 전에 팔굽혀펴기를 10개도 못했다. 입대하고 나서는 조금씩 운동을 해서 20개 정도는 하게 되었는데, 상병 진급을 위해서는 한 번에 48개를 해야했다. 상병 진급을 한 달 반 남기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는 매일 점심시간, 체력단련시간, 개인정비시간을 다 투자해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개수가 느는 속도가 너무 더뎠다. 체력측정 일주일 전까지도 40개가 한계였다. 나는 해도 안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놀랍게도 체력 측정 전 마지막 연습 때 합격선에 들어왔고 체력 측정 때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달리기 모두 합격을 해서 상병에 진급할 수 있었다. 사실 다른 동기들을 보면 대부분 운동을 거의 안하거나 조금만 하고도 48개 정도는 가볍게 하는 것 같아보였다. 그걸 보면서 난 약하게 태어나서 안된다는 생각과 함께 절망감이 들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서 목표를 이뤄낸 것에 스스로가 자랑스럽고 큰 성취감을 느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중 하나인 것 같다. 또한 나는 살면서 무언가를 할 때 난 그것을 '잘하는 편'에 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내가 잘 못하는 일에 대해 노력하고 경쟁하는 것이 생소했다. 그런 환경에서 1등은 아니더라도 내 목표를 이루었다는 것이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고, 내 시야를 넓혀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입대하고 당연히 학업도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나의 가장 큰 관심 분야인 창업과 컴퓨터 중, 처음에는 창업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두려고 했다. 그래서 훈련병 때부터 시간 날 때마다 창업 아이디어 노트도 써보고, 자대에 와서는 창업에 관련된 책도 읽었다. 그런데 책을 3권 정도 읽었을 때 쯤(6월 즈음), 창업을 직접 해볼 수도 없는 군대라는 환경에서 창업 그 자체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무의미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당연히 창업을 하려면 창업에 대해 잘 알아야하지만 결국 그 근본은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인 것이고 따라서 근본적으로 그러한 서비스를 '잘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공부의 방향을 창업에서 컴퓨터로 틀게 되었다.

자대 와서 읽었던 창업 관련 도서들
자대 와서 읽었던 창업 관련 도서들

그렇게 컴퓨터 공부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컴퓨터를 접하기 힘든 군대라는 환경의 특성상 사회에서 하던 것처럼 강의를 들으며 웹개발을 공부하는 것은 제한사항이 있었다. 컴퓨터와 함께 일하는 행정병이라는 내 보직이 컴퓨터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까 기대를 해보았지만 인터넷 연결이 안되는 인트라넷PC의 특성상 보직의 도움을 받기는 힘들었다. 사실 인트라넷 컴퓨터에서 메모장으로 2048이나 스네이크 게임을 만들어보긴 했는데, 선임들의 장난감으로 전락해버렸다... 메모장에 코딩하는 극한의 노가다는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그래서 방향을 틀어 책으로 할 수 있는 CS(Computer Science)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사회에서 CS 지식 기반이 부족한 채 웹개발을 해왔기도 하고, 컴퓨터공학 비전공자라는 나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자기개발비용으로 자료구조, 컴퓨터구조, 운영체제 책들을 사서 차례대로 공부했다. 동시에 컴퓨터 전반에 대한 교양서도 사서 읽었다.

[지금까지 공부한 / 읽은 책 목록]

그 중에 공룡책은 원서를 사서 읽었는데 한 50% 정도 공부를 하다가 너무 힘들고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임시 중단했다. 나중에 전역 후 또는 여유가 있을 때 코드 실습도 해보면서 다시 공부해보려고 한다. 아무튼 계속 책으로 공부를 하다보니 너무 컴퓨터 붙잡고 코딩이 하고 싶어서 2024년에는 사지방 가서 백준 문제풀이라도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전역하고나면 군대에서 공부한 CS지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프레임워크 등을 공부할 때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자기개발적인 부분 외의 군생활에는 별 문제 없이 잘 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동기들과도 사이 좋게 지내고 또 간부님들(특히 행보관님)께도 좋게 보여지는 듯 싶다. 정말 웃긴 게, 나는 사회에서 하던 노력의 절반도 안 하는 것 같은데 주변에서 내가 일을 가장 열심히 하고 또 행보관님께 가장 인정받는 병사가 됐다.

아 그리고 한 번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었다. 이런 저런 스트레스에 많이 힘들어하던 시기에 화가 많이 나는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그 일만 생각하게 되면서 점점 더 화가 많이 나고 호흡이 가빠지더니 결국 발작을 일으키면서 쓰러졌다. 나중에 알게된 바로는 그게 과호흡 증상이라고 하는데, 그 상태가 거의 20분정도 지속됐다. 전력질주를 한 것처럼 헐떡거리는 호흡을 멈출 수가 없고 숨이 엄청 차고 어지러운데 점점 손발이 꼬이는듯한 느낌이 들고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당직사령 차를 타고 응급실에 갔는데 난감스럽게도 응급실에 도착해서는 증상이 완화돼서 별다른 조치 없이 복귀했다. 나는 이런 증상이 계속 반복되면서 공황장애 같은 질환으로 발전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그러지는 않았다. 스트레스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아무튼 2023년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당연히 "군생활 50%"인데, 입대 전 내 인생의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하던 병역 문제를 해결하게 됐다는 점에서 아주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입대 전 조금의 방황의 시기에서 벗어나 입대 후에는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전역이 아주 기다려진다.

핸드폰으로 긴 글을 쓰다보니 적고 싶은 말이 많은데 한 절반도 못 적은 것 같고,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글과도 많이 다른 글이 된 것 같다. 원래는 내 감상과 느낀 점 위주로 쓰고 싶었지만 어쩌다보니 사실 나열 위주의 보고서같은 글이 되어버렸달까. 아쉽지만 이 작은 핸드폰으로 이 글을 편집하고 다시 적을 용기가 없어 이렇게 마치려고 한다. 2024년 회고록은 내 방 책상에 앉아 컴퓨터로 작성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내년에는 더 생산적이고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군생활이 됐으면 한다. 공부 꼭 많이 하자. 화이팅!